“진실 담긴 좋은 디자인은 멋내기 아닌 기능의 표현”
ㆍBMW 유일 한국인 디자이너 강원규씨
청년 실업은 여전하고 경제는 막 IMF 외환위기의 터널을 벗어날 즈음 자동차 디자이너 강원규씨(34)는 번듯한 직장을 뒤로 하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다들 “왜 힘든 때에 안정적 직장을 그만두느냐”고 말렸다. 미래도 장담할 수 없는 디자인 공부이지만, 그는 제대로 해보겠다고 떠났다.
지난달 새 BMW 7시리즈의 디자인 소개차 서울에 온 BMW의 유일한 한국인 디자이너 강씨를 최근 서울 강남 전시장에서 만났다. 그는 BMW 본사의 외형 디자이너 15명 중 한명이다.
BMW 독일 본사 디자인센터에서 근무한 지 겨우 4년여, 앞서 2000~2001년 기아자동차에서 근무한 것을 더해도 경험은 일천하다. BMW 측은 “강씨 작품이 지난해 파리모터쇼에 선보인 소형 다목적 콘셉트카 ‘X1’의 최종 3개 모델 중 하나에 오르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차 디자인에 대한 철학은 확고하다. 그는 ‘좋은 디자인’은 어떤 것이냐는 물음에 “깊이 있는 답은 며칠이 지나도 못 찾을 것 같다”면서도 “진실된 디자인이다”라고 규정했다.
특히 강씨는 “예컨대 소재부터 진실돼야 한다”며 “마치 가죽인 듯 보이면서 플라스틱으로 만들고, 알루미늄처럼 하는데 사실 플라스틱 도금이라든지 하는 건 안된다”고 꼬집었다. 강씨는 “겉보기에 그냥 멋있다고만 할지 모르지만, 차의 기능을 최대한 디자인으로 나타내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홍익대 산업디자인학과 출신인 강씨는 기아차를 그만둔 뒤 2001년 세계 차 디자인의 산실인 미국 ‘아트 센터 칼리지 오브 디자인’에 들어갔다. 졸업 전시회에서 BMW 캘리포니아 디자인연구소의 디자이너가 강씨 작품을 보고 독일 본사에 추천했다.
강씨는 “다른 친구들은 당시 유행이던 레저형차 디자인 등 왔다갔다 할 때 어려서부터 좋아한 GM 시보레의 스포츠카인 카마로만의 맛과 역사를 살리는 디자인을 했는데 먹혀든 것 같다”고 말했다. BMW, 아우디 등 유럽 브랜드들이 전통과 현대, 미래를 재해석해낸 강씨의 작품에 관심을 더 보였다고 한다.
그는 “차 디자인은 축약된 언어로 간략하고 바르게 표현하는 시(詩) 같은 것”이라며 “그동안 한국차는 표현이 과하거나 ‘문법’에 어긋나 소통이 안됐는데 요즘 기아차를 보면 훌륭한 시 같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강씨는 “세계적으로 활동폭을 넓히고 있는 선배 한국인 디자이너들의 성실함과 아이디어에 대한 평가 덕도 봤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최근 시보레 카마로의 새 모델을 디자인한 이상엽씨를 비롯해 포드, 닛산, 도요타 등에도 한국인 디자이너들이 약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