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경욱 편집위원 = 서모씨(50. 서울 강서구)는 최근 아찔한 경험을 했다. 자동차 선팅 때문이다. 여느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차에도 짙게 선팅을 한 그는 밤거리 좌회전을 하려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차량과 충돌 직전까지 갔다.
다행히 사고는 나지 않았지만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진다. 그가 무심코 좌회전을 택한 것은 선팅으로 바깥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로등 불빛이 약한 밤에 선팅까지 했기에 바깥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이모씨(48. 서울 성북구)는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차를 주차할 때마다 운전석 유리창을 내린다. 짙은 선팅 탓에 주차장 내부를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돈을 들여 한 것이기에 뜯어내기 아깝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최근 법제처가 규제완화 조치 가운데 첫번째로 경찰의 자동차 선팅(윈도 틴팅. window tinting) 단속을 폐지하도록 했지만 정작 선팅 규제를 오히려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 선팅 규제 강화 찬성 = 서울 종로경찰서 교통과 한 직원은 "과도한 선팅으로 곤혹스러울 때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야간에 음주나 기타 우범 의심차량 단속을 위해 먼저 운전석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 보아야 하지만 요즘 대부분 차량이 선팅을 짙게 해 쉽게 파악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창문을 내리지 않을 때에는 운전석 문을 열도록 하지만 운전자가 버틸 경우 뾰족한 대책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 직원은 "납치 등 강력 사건이 증가하는 추세를 감안할 때 최소한 운전석과 조수석 선팅은 아예 하지 못하도록 법규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통전문가들은 과도한 선팅은 안전사고 위험을 증가시킨다고 지적했다. 주차장에서 사물 식별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갑자기 들어갈 때 선팅 농도가 짙으면 몇 초 간 앞이 잘 보이지 않아 교통사고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선팅 단속을 폐지해 과도한 선팅을 방조하는 것보다는 지금처럼 선팅 단속을 하되 투과율 시비를 없애기 위해 좀더 많은 측정기를 일선 경찰에 지급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경찰청 교통안전과 직원은 "법제처의 규제 철폐 방침에 따라 선팅 단속을 폐지한다는 얘기가 나왔지만 현재 관련 도로교통법 개정 등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서별로 한두 대 정도 지급된 선팅 투과율 측정기로서는 단속의 효율성을 높이기 힘든 게 현실"이라며 "좀 더 여론을 지켜보면서 도로교통법 손질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 선팅 단속 폐지 환영 = 선팅은 자외선 차단 효과와 동시에 차안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도움이 된다는 지적도 많다.
법제처의 선팅 단속 폐지 방침이 전해진 이후 선팅 농도를 짙게 하겠다는 운전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선팅은 자외선 차단은 물론 여름철 차량 내부 온도를 낮추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입증돼 요즘 차량 가운데 90% 정도는 선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을지라도 이런 이유 때문에 선팅을 하는 것이므로 정부가 구태여 선팅 단속에 나서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이모씨(37. 서울 종로구)는 "안전사고의 위험을 느낀다면 스스로 선팅을 하지 않으면 될 일"이라며 "선팅의 투과율을 검증하기 어려워 단속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만큼 운전자 자율에 맡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