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순정’이나 ‘갈대의 순정’이 아니다. '생산라인에서 나온 그대로의 차' 인 순정자동차를 뜻하는 말이다. ‘순정차’란 용어는 튜닝카의 상대 개념으로 자동차 동호인들 사이에서 많이 쓰인다.
있는 그대로의 휠과 타이어, 원래의 핸들, 차 안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차창 등이 순정차의 특징이다. 물론 스티커 한두 장 붙였다고 순정차가 튜닝카가 되진 않는다. '열아홉 순정' 에서의 순정은 맑고 깨끗한 이미지를 담고 있다. 어쩌면 자동차의 순정도 비슷할 지 모른다. '만들어진 그대로의 차'이기 때문이다.
표준화된 상품으로서 순정은 의미가 있다. 순정차들은 서로 큰 차이가 없다. 같은 엔진, 같은 변속기, 같은 타이어인만큼 성능이나 품질이 같거나 비슷하다. 그래서 '천편일률, 획일, 몰개성'같은 수식어로 순정차를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끝까지 순정을 지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차를 타고 다니다 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차에 손을 대야 하는 일이 생긴다. 총각이 때가 되면 총각 '딱지'를 떼듯 ,‘순정’도 때가 되면 벗어야 할 거추장스러운 게 된다.
자기의 차에 욕심이 생기는 건 인지상정이다. 예쁘게 보이려고 범퍼가드 하나 달고(물론 범퍼가드가 단지 예쁘게 보이려고 다는 것만은 아니다), 안개등에 서치램프까지 설치하고 뿌듯해 할 수도 있다. SUV를 탄다면 험로에 올라섰다가 패배감을 맛본 후 타이어를 키우고 급기야 변속기의 기어비까지 손대기도 한다.
이 처럼 순정차의 단계를 지나면 튜닝카로 들어서게 된다. 스티커 몇 장으로 차를 꾸미다가 차의 여기저기에 에어로 파츠니 뭐니 하는 장치들을 더하고 알루미늄 휠과 광폭타이어를 찾아가며 천편일률적인 차를 ‘나만의 차’로 만들어간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그대로의 순정차가 조금씩 변신을 거듭하며 튜닝카가 되는 것.
때론 생산라인에서 나오자마자 확 뜯어고치며 일순간에 튜닝카로 변신시키는 사람들도 있다. 어쨌든 차를 튜닝하는 사람들의 심리에는 ‘나만의 차를 만들고 싶은 욕구’가 있다. '안정되고 더 높은 성능을 위해서'라는 이들도 많지만 그 역시 다른 차들과 다른 나만의 차를 만들고 싶은 정서가 있다.
이렇게 순정은 점차 일상의 때를 타면서 다른 모습으로 변해간다. 혹은 점점 미쳐간다. 마니아가 되는 것이다. 무엇인가에 미친 사람들이 마니아다. 음악 마니아는 음악에, 영화 마니아는 영화에, 자동차 마니아는 차에 미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순정은 ‘덜 미친(?)’ 이라는 속뜻을 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친 정도가 품격을 갖지 못한 채 너무 지나치면 ‘양카’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양아치같은 자동차'라는 의미를 품은 말이다. 차를 꾸미고 운전하는 행태가 천박하며 운전을 하면서 주변 차들에 피해를 주는 차들을 가르켜 양카라고 한다.
양카가 차를 꾸미는 의도는 오로지 하나다. 튀어 보이기 위해서다. 기능을 보완하고 성능을 높이려고 튜닝을 하는 게 아니라 남의 눈에 나와 내 차를 띄게 할 목적으로 차를 꾸미는 것. 당연히 성능이나 기능은 안중에 없고 오로지 외양에 치우친다는 특징이 있다.
순정차를 맨얼굴이라고 한다면 튜닝카와 양카는 화장한 얼굴이다. 튜닝카는 그나마 화장이 잘 먹은 얼굴이고 양카는 싸구려 화장품으로 떡칠한 얼굴쯤으로 설명할 수 있다.
오종훈 기자 ojh@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