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건 온통 산뿐인 깊고 깊은 두메산골 강원도 정선땅. 한 때는 ‘해가 뜨자마자 넘어가 버린다’는 말이 있을 만큼 골 깊고 산 높은 오지 중의 오지였으나 사방으로 길이 뚫리고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진 요즘은 두메산골의 모습을 많이 털어 버렸다. 그러나 사방 거친 산을 거느리고 구절양장의 길을 달려 정선땅으로 가는 풍경은 여전히 신산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 신산함은 비단 삭막한 풍경 때문만은 아니다. 너무도 유명한 정선아리랑의 애조띤 가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어서다.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아리랑으로 손꼽히는 정선아리랑은 다른 아리랑에 견줘 가락이 매우 느리고 애조를 더 띤다. 또한 인생살이의 애환과 남녀간의 애틋한 연정을 담은 노랫말이 무려 700~800수에 이를 정도로, 오랜 세월 애창돼 온 가락은 쉬 가슴을 흔들어 놓는다. 정선아리랑의 구성진 가락에 얹혀진 그 숱한 사연들은 여량나루 아우라지에서 생겨나고 사라지고 또 생겨나고 사라지면서 만들어졌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주게
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날 넘겨주게
떨어진 동백은 낙엽에나 싸이지
잠시 잠깐 임 그리워 나는 못살겠네
사방 거친 산을 거느리고 구절양장의 길을 달려 정선 땅으로 가는 풍경.
아우라지는 두 갈래로 흘러온 강이 하나로 아우러지는 곳이라는 뜻의, 정선군 북면 여량리에 있는 나루의 이름이다. 오대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송천과, 임계쪽에서 흘러드는 골지천이 합류하는 3거리에 있다. 임계천과 송천은 아우라지에서 한 줄기가 돼 조양강을 이루고 정선읍 북쪽에 이르러 오대천과 만나 남한강의 본류가 된다.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아우라지를 사이에 두고 여량마을과 유천리에 사는 처녀총각이 사랑을 했는데, 유천리의 싸리골에 동백을 따러 간다는 구실로 남몰래 만나고 하다가 어느 가을 홍수가 나서 아우라지에 배가 다닐 수 없게 되자 그 처녀는 총각을 만나러 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정선아리랑 가락에 실어 노래로 불렀다고 한다.
아우라지 나룻터 건너편 야산에 구전되던 아우라지 강변에 얽힌 처녀총각의 애절한 얘기를 전하기 위해 여송정을 세우고 그 앞에 강물을 바라보며 떠난 님을 애절하게 기다리는 처녀상이 건립돼 있다. 요즘도 아우라지에는 나룻배가 오가나 겨울에는 강의 상류가 얼어붙기 때문에 물이 줄어들어 징검다리를 놓고 걸어 다닌다.
정선 나들이 길에는 2, 7일에 열리는 정선 5일장과 꼬마열차를 빼놓을 수 없다. 시골 5일장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토속적인 재래시장에는 옛날 검정고무신, 짚신, 대장간 농기구, 감자송편(떡), 민물고기튀김, 메밀묵 등 메밀음식, 감자음식, 옥수수술, 산나물 등이 구색을 갖추고 있다. 겨울이면 감자떡, 옛날찐빵, 민물고기매운탕, 수수노치, 전병과 메밀부치기, 옥수수술 등이 입맛을 돋군다.
이 곳과 연계해 운행되는 꼬마열차는 객차 한 칸짜리 통일호 열차로, 증산↔구절리구간(45.9km)을 오간다. 사람 냄새 물씬 나는 꼬마열차에 몸을 싣고 깊은 산 계곡을 달려 보는 것도 색다른 추억이다.
*이 곳 명물-옥산장과 전옥매 여사
아우라지에 얽힌 숱한 사연이 700~800수에 이르는 정선 아리랑을 만들어냈다
아우라지에 있는 옥산장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전옥매 여사의 정선아리랑 한 곡조를 청해 듣지 않고서는 이 곳을 다녀왔다고 말할 수 없다. 아우라지를 지키는 전옥매 여사. 그녀는 스무 살 나이에 6·25 전쟁터에서 부상한 남편과 중풍으로 쓰러진 홀 시어머니를 모시며 생계의 방편으로 '옥산장'이라는 여관을 하게 됐다.
신산한 세상살이에 서러움이 복받칠 때면 집 앞 아우라지 물가를 찾았고, 강가에서 한없이 울며 정선아리랑 한 곡조를 부르고 나면 가슴에 콱 맺혔던 게 눈 녹듯 풀어지곤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돌덩어리 하나씩을 집으로 가져왔는데, 어느 날인가 다시 물가에 나가 보면 지난 번에 주워온 돌의 짝을 만나는 일이 생겼다고. 그 것을 보면서 전 여사는 세상만사에 음양이 있고 짝이 있듯 인간만사에도 괴로움의 반대쪽에는 반드시 즐거움이라는 짝이 있겠지, 하는 아주 평범한 진리를 터득하게 됐다.
이렇게 수집된 1,000여점 수석은 옥산장 마당과 수석전시장 '돌과 이야기'에 전시돼 있다. 12간지 열두 짐승의 모양을 한 수석과 학이 알을 낳는 형상, 또 한쪽 연못에는 하얀 연꽃이 막 피어나는 듯, 삼라만상이 한 자리에서 축제를 펼치는 그 구경거리를 꼭 놓치지 말길. 033-562-0739
*가는 요령
영동고속도로 상진부 교차로에서 빠져 진부쪽으로 2km 가면 진부중·고등학교 안내판을 지나자마자 3거리가 나온다. 이 곳에서 우회전하면 405번 지방도로와 만난다. 지방도를 타고 34km 가다가 왼쪽으로 난 나전교를 건너면 국도 42번과 닿는다. 여기서 좌회전해 8.7km쯤 달린 뒤 왼쪽길로 들어서면 아우라지 강변에 이른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동서울터미널에서 정선행 직행버스를 탄다. 정선에서 여량이나 구절리행 시외버스 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