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는 "해볼 만", 속으로는 '끙'
국내 자동차관련 4개 단체가 정부에 공식적으로 한일 FTA 체결을 반대하는 건의서를 제출했다. 반대이유는 일본차에 비해 아직 경쟁력이 낮다는 것.
최근 현대자동차는 세타엔진을 얹은 쏘나타를 출시하며 "이제 일본차와 당당하게 겨룬다"고 강조한 바 있다. 현대는 남양연구소에서 일반 고객들을 초청, 쏘나타의 경쟁차종인 혼다 어코드와 토요타 캠리의 비교시승을 실시하기도 했다. 일본차와 '한 판' 붙어도 밀릴 게 없다는 자신감의 표출인 셈이다. 그런 상황에서 건의서를 정부에 낸 배경은 무엇일까.
한일 자동차 FTA를 자동차업계가 반대하는 또 다른 이유는 체질이다. 일본은 이미 오래 전 수입차에 대한 관세를 없애 FTA 체결에 따른 영향이 없는 반면 우리는 관세를 통한 국내 자동차업체 보호에 주력했기 때문에 체질이 허약하다는 설명이다. 국내 자동차업계가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랐다는 걸 스스로 털어 놓은 셈이 됐는데, 재미있는 건 최근 현대차의 미국시장 내 점유율이 일취월장하고 있는 점이다. 세계 자동차업체들의 각축장인 미국에서 일본업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다. 품질면에서 결코 뒤지지 않고, 실제 이런 성과는 미국 내 각종 조사기관의 조사결과에도 나타나 있다. 그런데 유독 안방에서 일본차와 정면승부하는 데에는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왜일까.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여기서 준비란 제품, 브랜드 등이 모두 일본차에 비해 열세에 놓여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이번 건의서를 통해 국내 자동차업체들 스스로 그 점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아직 한국 자동차업체의 갈 길은 멀다. 단지 생산대수만으로 순위를 따지는 건 무의미하고, 이제는 질적인 성장을 도모해야 안방에서 누구와 붙어도 이길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다.
그러기 위해선 관련 기술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우수인력 양성과 과학기술에 대한 조기교육이 선행돼야 한다. 특히 자동차과학에 대한 조기 교육은 국내 자동차산업 발전을 위해서도 절실하다. 사실 국내 자동차업체는 이 같은 자동차 조기 교육과는 거리가 멀다. 간혹 산학협력이라는 명목으로 일부 대학생과 대학원생을 장학생으로 선발, 해외로 내보내지만 공부를 마치고 한국업체로 되돌아오는 이는 많지 않다. 어려서부터 국내 자동차보다 소위 해외 선진 메이커 제품을 동경하며 자랐기 때문이다.
자동차회사들이 대학에 지원을 집중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제품구매와 연결하기 위한 마케팅 활동의 일환이고, 또 하나는 당장 몇 년만 지나면 인력을 활용할 수 있어서다. 그러나 아직 전공을 정하지 않은 청소년이나 어린 학생들은 자동차를 배울 기회조차 없다. 간혹 모터쇼나 박람회를 찾아 포스터 한두 장을 받고 즐거워 하는 게 고작이다. 한국 자동차산업의 미래를 위해 FTA 체결 반대를 외칠 게 아니라 일본차와 경쟁할 수 있는 강력한 자동차 기술교육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게 먼저가 아닐까.